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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의 초대시] 커피에 대하여

기사입력 2023.11.0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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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 캡처 2023-11-01 120708.png

    경희지키미한의원 일산본점 블러그 캡처


     

    - 커피에 대하여 -

     

    정면 벽에선 모짜르트 초상화

    겁많은 고양이처럼 유감스러운 얼굴로

    나 노려보고있는 어느 카페에서였다

     

    가을 이별여행 대신 선택한 진한 카푸치노 한잔과

    은근한 보사노바 곡조에 취해,

     

    가을이 아주 떠나기 전에....

     

    강렬한 키스 여운 묻어나는 그 커피는

    맛이 아니고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떤 커피는 슬프고 어떤 커피는 기뻤다

    어떤 커피는 설레고 어떤 커피는 무덤덤했다

    그날의 커피, 그래서 더욱 미어졌나보다

     

    헤어지려하는 사람앞에 놓여있던, 덩그라니

    위장 맵싸하니 저려오고, 해서

    그 사람보다도 더 쓸쓸했던 악마의 수분

    이별의 자리에는 꼭 있어주어야하는

    섭섭한 정적의 기포덩어리

     

    눈물 보이지 않으려 체머리 흔들다

    카페 나서서

    과거로 난 밤길따라 걸어보면,

    아스라한 별빛 추억 행복한 가을색 젖어

    가슴 남을진대

    당신, 차라리 숲으로 가라

     

    보이질 않으니 아예 뜰 필요도 없어

    도시의 밤에는 그래서 별 뜨지 않으리니

    하얀 억새 바람에 흔들려

    밤새 붓이 되며

    산자락은 캔버스가 되는 그 숲에 묻혀

     

    별밤 지새워 스케치 하고나면

    파란 새벽 틈타 다시금

    가을 저무는 카페 들르게 될진대

     

    설운 이별로 간 맞추고

    비통에 찬 탄식 거품내어

    슬픈 생각만으로 휘저은 커피잔 높이 들어보자

    조용한 눈물맛 음미해보자

    이 가을 진객의 참맛을

     

    KakaoTalk_20230906_115157036.jpg

     림삼 문학평론가 겸 작가

     

    - 시작노트 -

     어느 가을날에 때맞춰 다루려고 했던 시다. 어쩌다보니 조금 철 지난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억지로라도, 마지막 보내는 가을의 숨결 한 자락 쯤은 남겨진 게 있는가 하여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까, 아주 늦어버린 건 아니라 여겨 조급히 서둘러본다. 커피! 커피? 사실 이런 저런 예를 들어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친숙한 우리들의 벗이다. 커피를 주제로 하여 시를 쓰거나 예술적 대화를 이어간다고 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신선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너무 흔하고 지천에 널렸으니 진부하고 식상한, 한 마디로 그저그런 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언제나 커피를 대할 때면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충동이 치밀어 오른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감추어졌던 아름다운 글을 토해내고 싶기도 하고, 번지수도 모르는 어떤 음률에 맞추어 흥얼거리게 되기도 하고, 솟아오르는 김이나 거품을 그림으로 그려 완성하고픈 충동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커피를 향한 오래된 로망은 젊었을 때보다도 이즈막에 더 열정적으로 피어오른다. 마치 첫사랑의 고백처럼,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사랑과 향수를 추억하라 꼬드기며 필자를 유혹한다. 그래서 필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른 아침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다고 여겨질 정도로 커피 애호가다.

     

    슬플 때 마시는 커피는 눈물 맛이 난다. 행복할 때 마시는 커피는 특히 그 향이 감미롭다. 바쁠 때는 여유를, 한가할 때는 활력을 채워주며, 커피는 필자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때론 커피를 통해 흥분을 가라앉히고, 혹은 커피를 마시면서 화를 진정시키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커피 한 잔으로 상처를 보듬어 안을 때도 있으며, 커피를 대하면서 스스로의 불찰과 실수를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커피가 없는 생활 전개는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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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산의 秋/ 김혜경 기자   

     

    그리고 추측컨대 이런 증상에 붙잡혀있는 사람들이 필자 말고도 부지기수일 거라고 여겨진다. 그만큼 커피와 현대인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지금도 그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는 우리 문학의, 예술의, 감성 표현의 오래된 도구이며, 매개이다. 지금도 커피를 통한 대화와 교류가 시간과 공간을 격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커피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그 깊고 오묘한 세계는 더욱 부끄러운 듯 고개 숙여 실체를 숨긴다. 마지막 남은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커피는 비교할 수 없는 멋과 맛을 영원토록 간직할 수 있는 불세출의 존재인 거다.

     

    밝고 청아한 햇살로 시작하는 오늘 아침의 명상에도,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과 스토리를 담고, 커피 한 잔이 필자의 책상머리를 장식하는 메뉴로 앉아있다. 모처럼 오늘 아침에는 나눔과 베품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며 찬 바람 부는 거리를 내다본다. 따스한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필자 혼자 누리기엔 주제넘은 행복을 공유할 이웃들을 떠올려본다. 필자에게 주어진 나름의 여유와 탤런트를 모두어, 가능하다면 바라는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그렇게 이웃한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게 늘상 작은 불씨처럼 되살아나는 필자의 소박한 바램이다.

     

    그래서인가? 오늘따라 따뜻한 이야기가, 정겨운 줄거리가 고파진다. 이런 내용은 어떨까?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의무경찰을 지원하여 경찰학교에서 훈련을 받던 한 청년은 어머니가 면회 오신다는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장애가 있고 홀로이신 어머니를 뒤로하고 입대를 했기 때문에 그 반가움은 더욱 컸다. 칼같이 다려놓은 제복을 입고 반짝반짝 닦아둔 신발을 신고 기다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면회시간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가 오시지 않았다. 그날 청년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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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마시는 가을 밤 풍경 /김혜경 기자 

     

    다음 날 아침, 청년이 교관의 다급한 호출에 면회실에 갔더니 그곳에는 전날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전날 면회를 오시는 중간에 어머니는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던 돈과 핸드폰을 모두 도둑맞은 어머니는 택시도 버스도 타지 못하고 밤새도록 걸어서 경찰학교를 찾아오셨다고 한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부랴부랴 집에서 손수 싸 오신 김밥과 치킨을 황급하게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런데 김밥에서 코를 찌르는 듯한 쉰내가 났다. 더운 날씨에 밤새도록 먼 길을 걸어오면서 김밥이 쉬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가 만든 상한 김밥을 먹으며 “역시 어머니 음식이 최고예요. 정말 맛있어요!” 라고 하얀 거짓말을 했다. 허기사 아들에게 어쩌면 맛있다는 그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 사연을 들은 동기들과 조교, 교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어머니의 차비를 마련해 줬다.

     

    지금 아들은 전역하고 10년이라는 시간도 훌쩍 지났지만, 그 때 훈훈했던 정(情)과 어머니의 상한 김밥 맛을 결코 잊지 못한다.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아무리 날씨가 험해도, 밤새 걸어가는 한이 있어도 자식을 향하는 것이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도, 자식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모든 어머니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한다. 자녀들에게는 어머니보다 더 훌륭한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은 없다. 그러기에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을 바라보는 눈길과 마음씨가 있다면 세상은 각박하지도 메마르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또 생각한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 자신해도, 돌아보면 뭔가 부족함과 아쉬움이 느껴지는 일이 종종 있다. 혹시 ‘나는 이것 쯤은,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의 비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의 인생을 100% 채울 수 있는 자신감을 찾아보자. 자기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것이 변하지 않을 진리이며, 삶의 팁이다. 누구나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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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힘을 모아 / 김혜겅 기자   

     

    아울러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처해진 입장에서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고,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언행을 삼가는 것이 기본적인 삶의 도리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다스린 후에 다른 사람의 처지나 상황을 이해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야 순서가 맞는 것이다. 우리 마음 안에는 누구에게나 빛이 있다. 그런데 그 빛은 우리의 고집과 이기심과 게으름과 나쁜 습관들에 쌓여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빛은 우리 마음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그 틈을 통해 밖으로 새나온다. 그것이 웃음이고, 밝은 얼굴이고, 좋은 말이고, 인품이다. 필자는 빛을 안고 촬영하는 역광 사진을 좋아한다. 이렇게 찍으면 빛이 꽃잎이나 나뭇잎을 통과하기 때문에 색과 모습이 섬세히 나타나, 사진이 밝고 따뜻하게 보인다. 마음에서 나오는 빛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역광이다. 내 안의 조그만 사랑, 감사, 기쁨이라도 얼굴에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침마다 대하는 모닝 커피 한 잔, 그 커피 속에는 필자의 삶이 있다. 꿈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사랑이 있고, 추억이 있다.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담스레 담겨 있으며, 변치 않는 세월의 약속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지난 시절의 아름답던 기억들이 녹아 있기도 하고, 다가올 내일의 가슴 뛰는 기다림이 작은 파문 일으키며 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에는 음악이 있고, 시가 있고, 미술이 있으며, 진실의 이름으로 커피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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